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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들과 이 땅의 시간 / 다시개벽 제4호 권두언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1:13
홍박승진
성스러움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느낌은 아픔 아닐까? 부처는 몸에 박힌 독화살을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당장 뽑아 버리라는 것이 자신의 설법이라고 말하며, 예수는 천국이 슬퍼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한다. 동학(천도교)의 성인도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말할 때 가장 성스러운 모습을 느끼게 한다. 특히 해월 최시형이 그렇다.
해월은 하늘님의 마음을 괴로움 속에서 바라볼 때가 많았다. 이는 그가 ‘어린이와 땅이 곧 하늘’이라는 사유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사상가들이 어린이의 기쁨을 하늘님의 기쁨으로 사유한 데 비하여, 해월은 어린이의 아픔이 하늘님의 아픔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니, 하늘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한다(打兒卽打天矣, 天厭氣傷. 「대인접물(待人接物)」, 『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 이하 『해월신사법설』 번역은 인용자의 것).” 이른바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勿打兒] 설법’이라고 하는 해월의 이 사유는 동학(천도교) 어린이 운동의 가장 직접적인 원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어린이가 기쁘면 하늘님이 기쁘다고 말하는 대신, 어린이를 아프게 하면 하늘님이 싫어한다고 말하였을까? 아픔은 기쁨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는 것일까?
어린이에 관한 해월의 이야기 가운데는 재미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번에는 아픔을 겪는 어린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이가 땅을 아프게 하였다는 것이다.내가 한가로이 앉아 있을 때, 한 어린이가 나막신을 신고 앞을 내달려
그 소리가 땅을 울리매, 놀라서 일어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 아이의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였다. 땅을 어머니 살갗처럼 아껴라.
余閑居時, 一小我着屐而趨前, 其聲鳴地, 驚起撫胸曰, 「其兒屐聲我胸痛矣」. 惜地如母之肌膚.
(최시형, 「성경신(誠敬信)」, 『해월신사법설』)유학에서는 부모를 봉양하고 조상을 받들라고 하는데, 그 까닭은 부모가 나를 낳았고 조상이 부모를 낳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고 기르는 것을 섬기고 모셔야 한다면, 천지만물이 나를 낳고 기르는 것이므로 천지만물을 부모와 똑같이 섬기고 모셔야 한다고 최시형은 말한다. 그는 땅의 아픔을 어머니 살갗의 아픔으로 느끼는 자기 가슴의 아픔 속에서 이와 같은 사상을 이끌어 낸다. 위 인용글에서 어린이가 나막신을 신고 내달리는 소리가 땅을 울리게 하고 아프게 하였다고 말한 것은 어린이 마음씨가 어리석거나 나쁘다는 뜻으로 보기 힘들다. 앞서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달음박질에도 땅이 아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무겁고 큰 어른의 달음박질에는 땅이 얼마나 더 아파할 것이겠냐는 함의를 위 대목의 행간에서 섬세하게 읽어 내어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손짓에 아파할 수 있으며, 땅은 어린이의 발짓에 아파할 수 있다.
최시형의 사유는 이처럼 아파도 아프다고 제대로 말 못하는 것, 또는 그 아픔의 하소연을 누가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것의 편에서 하늘님을 찾는다. 어른에게 학대를 받더라도 제대로 하소연할 수 없는 어린이가 오늘날에도 너무 많다. 사람이 함부로 망가뜨린 지구의 신음소리도 사람의 신음소리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가슴이 모자란다. 인류의 역사는 오랫동안 백인-남성-성인-자본가-비장애인-이성애자-인간의 아픔을, 유색인-여성-어린이-노동자-장애인-성 소수자-비인간의 아픔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왔다. 아픔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누가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것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것’일 뿐이다.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것까지’의 공공성을 해칠 경우 그것이 얼마나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는가를 무서우리만큼 강렬히 보여주고
있다. …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에 등장한 괴력을 지닌
소수자 ‘이인(異人)’들과 그의 물건(‘것’들)은 반가운 신호다. 생사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외계인, 도깨비, 카운터, 차사, 귀신, 괴물 등은
강력한 인간중심주의의 저들끼리의 ‘욕망’을 더 넓혀 ‘것까지’의 욕망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원진, 「코로나 시대에 되살아난 ‘사물(物) : 것’의 공공성」, 한국자치학회,
『월간 공공정책』 Vol. 184, 2021. 2, 78~80쪽)어린이도 사람이 아니라 ‘것’으로 취급받으며, 땅도 사람이 아니라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번 호의 표지에 “아픈 것들과 이 땅”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동학에서 꿈꾸는 다시개벽은 모든 ‘것’이 ‘님’으로 자리해야 한다는 요청과 같다. 해월이 어린이와 땅의 아픔을 사람과 하늘의 아픔으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픈 것을 알아차리기’는 최시형이 도를 깨우친 시점에서부터 강렬하게 나타난다. 그는 35세 때인 신유년(1861)에 동학을 하고자 마음먹었는데, 아무리 도를 닦고 독실히 공부해도 하늘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이에 더 정성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검곡이라는 골짜기(경상북도 포항시 신광면에 위치)에서 몹시 추운 겨울(11~12월로 추정)임에도 밤마다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하기를 두 달 넘게 계속하였다. 그렇게 얼음물 속에서 목욕을 하던 어느 날, 문득 하늘로부터 “따뜻한 몸에 해로운 바는 찬물에 급하게 들어가 앉는 것이다(陽身所害 乃寒泉之急座)”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소리를 괴이하고 놀랍게 여긴 그는 그 뒤부터 얼음물 목욕을 멈추었다. 이듬해 3월 어느 날 그는 스승인 최제우를 만나서 그 일을 아뢰었다. 그러자 최제우는 해월이 하늘에서 들은 그 말소리는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이 은적암(전라남도 남원시 교룡산에 위치)에서 읊은 글의 한 구절이라고 기뻐하며 말하였다(이돈화, 『천도교창건사』, 천도교중앙종리원, 1933, 92~93쪽과 『해월선생문집』을 참조).
해월은 ‘찬물에 갑자기 들어가 않으면 몸에 해롭다’는 말소리를 하늘로부터 들었을 때 득도한 것이 아니다. 그저 괴이함만을 느꼈을 따름이다. 그는 멀리 떨어진 산속 절간에서 스승이 제자들을 걱정하며 읊조리던 말이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이 하늘에서 들은 소리였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커다란 깨우침의 순간은 해월 사상이 아픔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진리를 모르는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 제 몸에 고통을 가하는 그 어둡고 춥고 답답한 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말소리가 곧 하늘님 말씀임을 알아차리는 것, 그 어둡고 춥고 답답한 마음 자체가 하늘님 마음으로서 누군가에게 공감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의 마음속에 신성이 내재함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건은 아픔을 매개로 하는 마음의 소통 활동에 매우 독특한 시간성이 있음을 드러낸다. 전남 남원의 교룡산에서 읊조린 말이 동시간대의 경북 포항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시간성은 ‘시간=거리/속력’의 공식으로 환원할 수 있는 시간과 전혀 다르다. 물리적 거리와 속력에 종속되는 물리적 시간과 전혀 다른 것이다. 좁은 범주의 사람, 즉 유색인-여성-어린이-노동자-장애인-성 소수자-비인간을 배제한 사람에게 시간은 그런 평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범주 바깥의 ‘것’들은 어둡고 춥고 답답하다는 말소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그 아픈 마음의 소통 자체를 새로운 시간의 파동으로 펼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번 호의 제목을 “아픈 것들과 이 땅의 시간”이라고 하였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 주어가 되는 과거·현재·미래는 새로운 의미의 과거·현재·미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삶에 근거하여 더 보편적인 사유를 더 주체적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다시쓰다› 꼭지에는 여섯 편의 글과 김동민의 세 번째 연재를 실었다. 특히 여섯 편의 글은 공통점에 따라서 앞의 세 편과 뒤의 세 편으로 묶어서 읽으면 더 재미나도록 배치하였다. 앞의 세 편은 우리가 이미 숨 쉬고 있는 현실 속에 어떠한 전복과 해방의 힘이 내재하는지를 살핌으로써, 과거부터 지금까지 억압받아 온 인민의 경험과 기억 속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대안의 미래가 들어 있음을 증명한다. 뒤의 세 편은 그 해방과 대안의 꿈을 동학(천도교)와 함석헌의 씨ᄋᆞᆯ 사상과 북한의 반제국주의 주체 이념 등과 같은 한반도의 자생적 사유로부터 길어 올린다.
안희제의 글 「시간들의 교차로에서: 아픈 사람, 퀴어, 장애의 시간」은 크론병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집에서 통증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일어나 실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 그리고 휠체어 탄 친구와 카페에서 만나 휠체어 바퀴가 한국의 거리에 나올 때 걸리는 시간을 고민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하루의 이야기이다. 이 하루의 이야기는 ‘표준’의 시간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장애의 시간이 “미래 없음의 위협 안에서 순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퀴어의 시간’, 그리고 “시간 자체를 재고하게” 하는 ‘불구의 시간’과 온몸으로 교차하면서, 장애인의 일상이 이른바 (정상인)의 시간을 얼마나 비정상적인 폭력으로서 직면하는지를 드러낸다.
박희주의 글 「멸망을 겪은 자들이 그리는 미래: 아시안 퓨처리즘과 라티노/라티나 퓨처리즘에 대하여」는 오늘날 북미에서 인종적 소수자의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SF 이야기들이 폭발하고 있으며, 이는 이미 식민 지배와 같은 디스토피아와 파멸을 겪은 사람의 관점에서 백인·남성·이성애 중심의 현실과 SF 사이의 경계선이 과연 얼마나 자명할 수 있는지를 심문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서구 중심적 문화에서 언제나 대상화되던 인종적 소수자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이야기하는 실천,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여행이라는 서사 형식은 제국주의적 시간관인 직선적 시간관에 맞서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평행적 시간관을 제시함으로써,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과거로부터 서구-근대-제국주의가 포획하지 못하는 새로운 대안적 미래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원진의 글 「K-정치좀비물의 기원을 찾아서: 순종의 열망과 잡종의 변이 혁명」은 최근 한국 판타지 드라마에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하여 이승과 저승, 현대와 과거를 소통시키며 인민의 고통을 풀어 주는 샤머니즘적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특성은 드라마 ‹킹덤›에서 입만 남은 인민 좀비의 몸이 ‘밥이 하늘님’인 세상으로 돌진하는 것, 좀비이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좀비로 부활하는 것, ‘순수혈통’의 위계를 고집하는 민족-국가의 권력에 맞서 “잡것(천것)의 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조성환의 글 「동학・천도교의 생명미래주의(biofuturism): 최시형의 향아설위와 김기전의 어린이론을 중심으로」는 ‘동학(천도교)에서 어린이운동을 하는 철학적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흥미로운 물음에서 출발하여, 천도교 사상가 김기전의 어린이주의를 유학의 상고주의에 맞선 미래주의로 해석하는 한편, ‘조상이 아닌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최시형의 향아설위 사상을 생명주의로 해석한다. 동학(천도교)에서 말하는 개벽은 김기전의 미래주의와 최시형의 생명주의가 접합하는 지점이므로, 이 글은 미래가 생명을 열고 생명이 미래를 연다는 뜻의 ‘생명미래주의’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김대식의 글 「지금은 ‘생태적 시간’이 요청되는 때!」는 한국 민중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바라본 함석헌의 역사관에 근거하여, 계측적인 인위의 시간과 자본주의적인 폭력의 시간에서 벗어나 인간 주체의 한계를 인식하는 자연적 시간과 비소유(非所有)를 지향하는 아나키적 시간을 모색한다. 더 많은 생산과 소유를 위해서 시간을 끝없이 쪼개고 가속화하는 계측적·자본주의적 시간과 달리, 자연적·아나키적 시간은 각기 고유한 생명을 느리게, 게으르게, 자유로이, 오롯이 누리는 ‘짬’ 속에서 자기 주변의 이웃과 자연을 돌아보며 그들의 고난을 함께 경험하는 생태적 시간이 된다.
정혜정의 글 「분단의 시간, 북한의 ‘반제(反帝)’와 ‘주체(主體)’」는 8·15 해방 이후로 남북한 분단이 굳어져 온 과정 속에서 북한이 남한과 다른 빛깔의 시간을 통과해 온 과정을 거침없고도 정확한 필치로 짚어 낸다. 미국·일본에 맞서려는 반제국주의와 중국·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는 반대국주의(反大國主義)를 통하여 주체적 민족성을 지키고자 하였던 북한의 시간은, 서구 근대 자본주의 문명 아래의 정신적 식민화에서 아직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한의 시간에 새로운 통찰을 던지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지난 제3호에 이어서 이번 호에도 제도권 학문에 찌들지 않은 청년의 새 목소리를 ‹다시열다› 꼭지에 담아내었다. 김지우의 글 「나를 반성하다: ‘함께철학’을 통한 나의 개벽」은 지금까지 타자를 객체로 여기며 나 자신의 독단적 자유를 추구해 온 코기토적 개인주의, 그리고 투쟁과 폭력을 통한 발전이 가장 훌륭하다는 서구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곧 나의 개벽이며, 그 개벽의 씨앗이 한국철학사에 담겨 있음을 깨달아 간 과정의 기록이다. 원효의 화쟁과 최치원의 풍류도로부터 동학의 천지부모 사상까지를 관통하는 한국철학의 특징은 생각의 차이, 계급의 차이, 인간/비인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함께철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개벽에의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다시읽다› 꼭지에는 세 편의 글을 실었다. 이정아의 『지구적 전환 2021: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 다시개벽의 징후를 읽다』 서평은 우주 만물을 ‘님’으로 부르는 의식과 관계의 전환, 지구의 위기를 인간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성숙, 자본주의적 각자도생의 확증편향을 넘어서는 정서적 연대, 전환사회운동과 생태민주주의의 바탕이 될 지구인문학을 다시개벽의 징후로 짚어 낸다. 홍박승진의 글 「방정환의 동시(童詩)와 동학의 자연사상」은 성인 중심의 문학사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생명이 생명을 끝없이 살리는 우주 자연의 내재적 신성이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는 동학의 관점이 어린이주의적 문학사 모색의 사상적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황종원의 글 「위기의 시대, 동학을 다시 읽는다: 『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에 관한 서평」은 기독교적 회심 개념과의 비교가 동학사상의 강점과 약점을 밝힐 수 있고, 보편주의와 다원주의를 결합하며 신비주의와 사회적 윤리를 결합한 동학이 현대사회의 종교 문제에 유의미한 통찰을 제시하며, 서구 근대의 폐단이 극한에 이른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성에 근거한 생태적 신문명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말한다.
조한혜정(제1호), 안상수(제2호)와의 대담을 이어, (제3호에서는 잠시 쉬어 간) 이번 호 ‹다시말하다›에서는 SF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셰릴 빈트(Sherryl Vint) 교수가 그의 제자이자 본지 편집위원인 유상근과 나눈 대담을 담았다. 이 대담에서 빈트는 SF가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삶의 변화를 드러낼 수 있으며, 사변문학이 미래의 사회 구조에 관한 사고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페미니즘처럼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적-영적 사유에 관한 한국사상의 흔적을 발굴하는 ‹다시잇다› 꼭지에서는 두 편의 글을 현대 한국어로 소개하였다. 김현숙이 옮긴 이돈화의 글 「문화주의와 인격상 평등」은 기존 연구에서 일본 문화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지만(허수, 『이돈화 연구』, 역사비평사, 2011), 이번 현대어 번역으로 드러난 그 글의 실상은 단지 문화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만인의 하향평준화를 넘어서 만인의 생명 도약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길수와 조성환이 옮긴 이관의 글 「종교는 철학의 어머니」는 유심론 철학과 유물론 철학 각각의 폐단을 지적하며 그 원인이 종교에 근거하지 않고 방향성을 잃어 지엽말단에 천착한 탓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제5호(겨울호)는 계간 『다시개벽』 창간 1주년 특집이다. 매년 겨울호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기로 하였으므로, 제5호는 동학(천도교)의 탈식민주의를 각 분야에 따라서 다각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철학, 역사학, 문학, 정치학, 윤리학, 미학, 종교학, 신학 등의 관점을 통해서 사대주의에 맞선 동학의 창조성과 그것의 현대적 의의를 살필 것이다. 이처럼 한국 안에서 동학의 창조성을 바라보는 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밖에서 동학의 창조성을 바라본 사례까지 제5호에 담고 싶다. 이 주제에 관한 독자의 원고 역시 간절히 기다린다. 찬물에 들어가 앉은 마음으로.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는 말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계간 다시개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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