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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개벽 제4호 편집후기
    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1:14

     ‘상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국민상생지원금’을 신청한 날 편집후기를 쓴다. 마침 이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생 처음 국민들로부터 생일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국민의 한 사람인 조성환이 생일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국민에는 나도 들어 있으니 당연히 나도 내 생일선물에 일조를 한 셈이다. ‘상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나와 너 사이의 상생뿐만 아니라 부분과 전체의 상생인 것이다. ‘너’라고 할 때에도 ‘내’가 들어 있고, ‘나’라고 할 때에도 ‘전체’를 머금은 나인 것이다. 이것을 개념화하면 자생(自生)이나 상생(相生)보다는 ‘전생(全生)’이 될 것이다. 나의 삶과 인류의 삶, 나아가서는 지구의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함께 살고 있다는-. 

    김지우의 「나를 반성하다: ‘함께철학’을 통한 나의 개벽」은 이러한 깨달음을 고백한 글이리라. 안희제의 「시간들의 교차로에서: 아픈 사람, 퀴어, 장애의 시간」과 박희주의 「멸망을 겪은 자들이 그리는 미래: 아시안 퓨처리즘과 라티노/라티나」는 그 ‘함께’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김대식의 「지금은 ‘생태적 시간’이 요청되는 때!」는 그 ‘함께’의 차원이 인간을 넘어 천지와 만물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으며, 정혜정의 「분단의 시간: 북한의 반제反帝와 주체主體」는 전생(全生)이 분생(分生)이나 단생(斷生)으로 쪼개지는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아픔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민중의 삶이 농토에서 분리되고 국토에서 소외되는 데 대한 반발에서 개벽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벽은 “전생(全生)의 자각을 통해 ‘함께의 시간’을 열고자 한 미래운동”으로 규정될 수 있다. 개벽이 SF와 만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SF는 ‘새로운 미래’를 말하는 “짙은 정치성과 혁명성”을 띤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다(셰릴 빈트-유상근 인터뷰, 이원진 「드라마/매체 속 아시안 퓨처리즘」). 그런 의미에서 최제우와 하늘님이 ‘개벽’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조선의 SF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그 개벽의 꿈이 20세기에는 ‘공상’으로 치부됐지만, 21세기의 현실은 그것의 ‘구현’을 요청하고 있다. 『다시개벽』이 150년 전의 개벽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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