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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개벽 제7호 편집후기
    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1:50

    이번호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두 명의 편집위원이 새롭게 보강되었다. 한 분은 동학/천도교를 연구하는 가톨릭대학교의 김남희 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환경철학 연구자 우석영 선생님이다. 김남희 편집위원은 최근에 『하늘과 인간 그리고 개벽』을 간행하였고, 우석영 편집위원은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를 번역하였다. 훌륭한 선생님을 두 분이나 모시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지난 3월부터 홍박승진 편집위원이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아울러 교수 취임을 계기로 『다시개벽』 편집장으로 복귀하였다. 강의 준비나 학과 일로 정신이 없겠지만 『다시개벽』으로서는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 맨 처음 접한 글은 [다시뿌리다]에 실린 윤혜민님의 글이다. “너무도 많은 것을 알았기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혜미니스트의 선언은 마치 내가 한국학에 눈을 떴을 때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한국 지성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운동장에서 놀아나지 않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뭔지 모를 동지애를 강하게 느꼈다.

    이어지는 「생명학연구회, 무엇을 연구할까?」는 저자가 ‘신채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보은취회’에서 처음 만난 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그 뒤로 『개벽신문』이나 동학 일을 통해서 여러 번 신세를 졌다. ‘생명학연구회’도 초창기에 몇 차례 참여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개벽파의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서두에서 “이 모임의 발자취를 보며 설레면서도 허탈해졌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나도 선인들의 학문적 업적을 접할 때마다 마찬가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생명운동의 태동이 1976년의 <원주선언>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맹주형님의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천주교 창조보전운동」도 반가운 글이다. 『찬미받으소서』만 해도 귀가 솔깃한데, 거기에 개벽까지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찬미받으소서』는 지구인문학 연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토마스 베리라는 인물에 매혹되어 있었는데, 그의 통합생태학이 『찬미받으소서』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 글을 통해 『찬미받으소서』가 2015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2015년은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도가 올라간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로 <파리협정>이 체결되고 ‘신기후체제’가 출범한 해이기도 하다. 아울러 차크라바르티의 예일대 강연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도 2015년의 일이다.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해이다.
    한편 본문에서 인용된 레오나르도 보프의 저서 『지구의 울부짖음(Cry of the Earth,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Cry of the Poor)』에서 저자의 ‘생태적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종교단체들이 연합하여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종교환경회의>와 같은 운동에서 한국종교의 특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국가적 혹은 지구적 이슈가 생기면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서로 연합하고 함께 연대하는 경향이다.

    「다시쓰다」에 실린 「인류세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저자 시노하라 마사타케(篠原雅武, 1975~ )는 작년부터 지구인문학 연구팀과 학술교류를 하고 있는 일본의 인류세 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인류세의 철학 –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2018)은 올 여름에 모시는사람들에서 번역서가 나올 예정이다. 이번에 실린 글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다시말하다]의 인터뷰는 두 가지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서두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의 집필 동기다. 17살 때 친구한테 받은 『위대한 한국인』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해월 최시형』 편을 읽고 큰 충격에 빠져 소설을 쓰는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위대한 한국인’ 시리즈에 최시형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한테는 충격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집에 위인전이 있었지만, 대부분 외국의 위인들이었고 동학 관련 인물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이승만이나 김옥균 편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다는 저자의 고백은 우리가 한국근대사를 공부할 때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위대한 한국인』은 1972년에 간행되었고, 『해월 최시형』 편의 저자는 ‘최동희’였다. 이 전집에는 최시형 이외에도 손병희, 안창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김좌진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과연 7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기획이다. 최제우가 아닌 최시형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해월 최시형』의 저자 최동희 교수님은 동학사상 연구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박사논문을 쓸 때 그 분의 『새로 쓰는 동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교수님이 쓰신 『최시형』이라면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이다.
    저자의 인터뷰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버지’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추운 겨울에 만취한 아버지가 『전과』 한 권을 들고 오셨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철모를 때 이런 아버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제는 두 딸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에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의 인솔로 전북 완주군 대둔산에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 항쟁지를 답사한 적이 있다. 1894년 11월 중순, 해발 715미터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자그마한 미륵바위에서 두 달을 항쟁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1살짜리 아이의 ‘아버지’도 있었다. 접주 김상순이다. 그 좁고 추운 곳에서 초막을 짓고 같이 두 달을 같이 산 것이다. 그러다가 1895년 1월 24일 아침, 일본군이 바위를 타고 올라오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농민군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그 중에는 임산부도 있었다고 한다. 접주 김상순은 딸아이를 안고 천 길 벼랑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성강현, 〈대둔산에서 동학농민군 최후의 혈전〉, 《울산저널》, 2019.06.14. 참조). 이렇게 해서 1년에 걸친 동학농민군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참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다. 동학농민군들은 대부분 김상순과 같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호의 제호는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로 잡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은 철학 책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은 흔하지 않다.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은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의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이 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면 물음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예전과는 ‘다른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달라진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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