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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개벽 제8호 편집후기
    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2:04

    『다시개벽』 제8호가 ‘이동’을 화두로 삼은 것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투쟁에서 비롯하였다. 편집위원들은 이동을 둘러싸고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속에서 소외되는 약자들의 외침이 전장연 투쟁이라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편집위원들은 전장연 투쟁이 단순한 사회적 차원을 넘어서는 사건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회와 자연은 근본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장연 투쟁이 사회에 제기하는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인 ‘뭇 존재자의 평등한 이동권’은 인간만의 기본권이 아니라 모든 자연 생명체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우석영 편집위원은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시하였다. “인권의 기저에는 동물권이 있다. 이동은 모든 동물이 동물로서 누려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전장연 투쟁이 촉발한 장애인 이동권에의 성찰은 이렇게 생명의 이동권에 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인간의 이동권과 생명의 이동권을 분리하는 관점은 생명의 보편적 이동권에 대한 침해와 맞물릴 위험이 크다. 예컨대 ‘근대’ 사회에서 표준으로 삼는 생활 방식은 ‘더 빨리, 더 편하게 이동하려는 욕망’에 근거한다. 이 욕망에 근거하는 고속 이동의 사회는 그와 같은 고속 이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이동 취약층을 낳는다. 인간들이 더 빠르고 더 편하게 이동하기 위하여 건설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의 각종 교통 인프라는 동물의 이동권을 심각히 침해한다. 또한, 더 빠르고 더 편하게 이동하려는 욕망은 ‘장애인이 집 밖에 나와서 비장애인의 이동을 더 늦어지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든다’는 비난을 정당화하고, 그리하여 ‘비장애인만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고 장애인은 집 안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편견을 더욱 공고화한다.
    장애인과 비인간을 소외시키는 고속 이동의 욕망을 반성하고 이동의 권리를 보편적 생명의 문제로 다시 사유하는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동학(東學)의 ‘이(移)’ 개념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동학사상의 핵심은 ‘우주 만물의 하늘님 모심[侍天主]’, 즉 ‘하늘님을 모시는 존재자’로서 우주 만물의 본질을 사유하는 것이라 한다. 문제가 되는 ‘이(移)’ 개념은 수운 최제우가 ‘모심[侍]’의 뜻을 풀이하는 대목에 나온다. ‘모심이라는 것은 (모시는 자의) 내부에 신령스러움이 있고 (모시는 자의) 외부에 기운의 변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지불이(各知不移)하는 것이다(『동경대전』 「동학론-논학문」. 이하 모든 천도교경전 번역은 필자가 한 것).’ 여기에서 ‘내부에 신령스러움이 있고 외부에 기운의 변화가 있다’라는 부분을 해월 최시형은 생명체가 태어나는 과정에 빗대어서 쉽고도 시원하게 해석한다. ‘내부에 신령스러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마음을 가짐’과 같고, ‘외부에 기운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생명 원리에 따라 자기를 둘러싼 영양분 등의 여러 물질을 먹고 뱉으며) 몸을 이룸’과 같다는 것이다(『해월신사법설』 「영부주문」). 모든 생명체의 본질을 ‘마음과 몸이 있음’에서 찾아야 하고—이 점은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고 비인간에게는 몸만 있다고 간주하는 데카르트 식 서구 근대철학(심신이원론)과의 결정적 차이이다—, 이 ‘마음과 몸이 있음’이 곧 ‘하늘님 모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나오는 ‘각지불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 뜻이 ‘모심’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지불이’는 축자적으로 ‘각자 알아서 옮기지(이동시키지) 않는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무엇을 각자 안다는 말이고, 무엇을 옮기지(이동시키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에 관한 해답의 실마리는 ‘모심’의 뜻을 풀이한 구절의 바로 다음에 ‘이(移)’라는 글자가 한 번 더 나오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물었다.] 하늘 마음이 곧 사람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좋음과 나쁨이 있습니까? … [수운이 답하였다.] 군자의 힘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지므로 그 힘이 천지와 들어맞습니다. 소인의 힘은 기운이 바르지 않고 마음이 ‘이동’하므로 그 명(命)이 천지와 어긋납니다(“天心卽人心則, 何有善惡也? … 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故, 與天地違其命.” 『동경대전』 「동학론-논학문」. 번역은
    필자의 것).

     

    기운—그리고 그 기운이 변화하여 생겨난 한 가지 모습으로서의 몸—은 하나의 생명체가 자기 외부에 모시는 하늘님이고, 마음은 하나의 생명체가 자기 내부에 모시는 하늘님이다. 양자는 (외부와 내부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나타나고 움직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늘님일 뿐이다. 이처럼 뭇 생명체의 마음과 몸은 하나의 하늘님을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모시는 것임에도, 유독 인간만이 자기 마음을 나쁘게 쓰거나 자기 몸을 나쁘게 부리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수운은 그 물음을 ‘기운이 바름[正]/바르지 않음[不正]’과 ‘마음이 정해짐[定]/옮겨짐[移]’의 관점에서 사유한다.
    다른 모든 생명체가 태어날 때 하늘님을 자기의 내부와 외부에 모시는 것처럼 인간도 태어날 때 자기의 내·외부에 하늘님을 모신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을 태어났을 때의 본래적 상태, 즉 자기 내부에 하늘님을 모신 상태로 정해두지 못하고 그 상태에서 옮겨질 때가 있다. 그때가 자기 마음을 나쁘게 쓰는 때이다. 또한 인간은 자기 몸과 그 기운을 본래적 상태, 즉 자기 외부에 하늘님을 모신 상태와 같이 바르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가 자기 몸과 기운을 나쁘게 부리는 때이다.
    이처럼 독특한 동학의 ‘좋음/나쁨’ 개념은 서구 전통 철학의 선악 개념과 크게 다르다. 서구 전통 철학에 따르면, 비인간은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비인간의 움직임에는 선과 악이 없으나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지니므로 인간의 행위에는 선과 악이 있다고 한다. 서구 전통 철학은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라는 특권이 있으므로 인간에게만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책무가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논리는 인간의 권리만을 인정하고 비인간의 권리를 무시하는 논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와 대조적으로 동학에서는 뭇 생명체가 마음과 몸을 본래 상태(태어나면서 하늘님을 자기 내·외부에 모시는 상태)에 따라 활용하지만,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마음을 그것의 본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게끔 쓰거나 자기 몸과 기운을 그 본래 상태처럼 바르게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구 전통 철학이 선과 악을 인간에게만 있는 권리-책임(자연 상태로부터의 업그레이드)으로 본다면, 동학은 좋고 나쁨을 인간만이 자연 상태에서 다운그레이드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본다. 여기에서 ‘이(移)’는 ‘인간 마음이 자연 상태(하늘님을 자기 내부에 모시는 상태)에 정해지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뭇 생명체가 평등하게 이동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각자의 편리와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본래의 마음으로, 태어날 때 자기 내부에 하늘님을 모시는 상태와 같은 마음으로, 천지자연과 어긋나지 않고 들어맞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인간이 자기 마음을 자연 마음에 정하지 않고 다른 마음으로 옮길 때의 이동은 자연 상태에서 다운그레이드된 이동일 것이고, 끝내는 천지자연의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이동일 것이다. 인간이 자기 마음을 자연 마음에 정해 두고 다른 마음으로 옮기지 않을 때의 이동은 천지의 평화롭고 평등한 권리를 훼손치 않는 참다운 이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마음의 불이(不移)는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물의 몸-기운이 바르게 운동·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참다운 이동(移動)은 곧 ‘인간 마음의 불이(不移)’와 ‘생명의 자연스러운 활동(活動)’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임을 밝힘으로써 이번 호의 매듭을 짓는다. (홍박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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